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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꿈꾸는 소시민 2025. 7. 2. 02:32

 

신이시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엔 신이 늘 가까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손을 모으면 곁에 와 계시고, 힘든 일이 생기면 어느샌가 지켜보고 계실 거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렸고, 이제는 그 존재마저 명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살아가며 고통을 겪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떤 절대적인 존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 존재가 반드시 신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에게 이런 감정이 드는지, 왜 세상이 이토록 불완전한지.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질문은 뚜렷한 대답 없이 지나갑니다. 신은 거기에 계시는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아무도 거기 없었던 걸까요?

 

이따금 제 안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쿼바디스(Quo vadis)?” —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이는 본래 베드로가 로마를 떠나던 중, 부활한 예수를 만나 던졌다는 질문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 순간, 인간은 신에게 길을 묻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시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저 역시 자주 이 질문을 마음속에 떠올립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저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제가 신을 찾았던 순간들은 늘 조용한 고독 속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가 아니라, 혼자 남겨진 밤이나, 이유 없는 허무감이 밀려올 때. 그런 때일수록 저는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 침묵이 신의 대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간섭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떤 방식의 존재일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갑니다. 어딘가에 계신가요? 아니면, 그 질문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일까요. 신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지만, 더는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형상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엇. 인간의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어떤 가능성. 그렇게 막연한 형태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제는 그 불확실함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신이 있다면, 언젠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고, 없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신이 있는지보다, 우리가 그 존재를 찾으며 어떤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가일지도 모릅니다.

 

신이시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쿼바디스.” 그 물음은 어쩌면 대답을 바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그 질문을 조용히 마음속에 띄워봅니다. 반드시 해답을 얻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