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때로는 그 물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뼈아픈 상처만 남기기도 합니다.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거북섬 이야기’**가 딱 그런 경우인데요. 한 정치인의 자랑 섞인 한마디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화제와 비판을 받으며, 과잉 투자의 거친 파도가 휩쓸고 간 뒤 남겨진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시흥 거북섬, 꿈의 해양레저 도시가 '유령섬'으로
한때 수도권 최대 해양레저 복합도시로 기대를 모았던 경기 시흥 거북섬은 지금 처참한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인공 서핑장인 웨이브파크를 중심으로 상업, 주거, 관광 시설이 어우러진 핫플레이스가 될 거라는 장밋빛 전망은, 현재 87%에 달하는 충격적인 공실률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말 그대로 '유령섬'이 되어버린 셈이죠.
거북섬 일대의 상가들은 분양을 마쳤음에도 텅 비어 있습니다. 총 3,253개 점포 중 겨우 13%만이 입점해 있을 뿐, 대부분의 상가에는 '임대 문의' 포스터만 쓸쓸히 나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거북섬 상업용지 중 가장 큰 규모인 15,574㎡ 부지는 지난 5월까지 세 번의 공매에서도 유찰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건축 허가까지 받은 상태인데도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는 건, 이 시장의 냉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합니다. "지금도 여기저기 텅텅 비었는데 몇백 개나 더 들어온다니, 다 같이 죽으라는 거냐"는 한탄은 상권의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거북섬이 이렇게 침몰하게 된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과대 광고와 현실의 괴리였습니다. "바다 앞 프리미엄", "수도권 최고의 레저 도시"라는 화려한 문구로 투자자들을 유혹했지만, 정작 핵심 시설인 웨이브파크의 관광객 유치 효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2017년 한국수자원공사와 시흥시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해양레저 복합단지 개발 계획은 스페인의 휴양 명소 '코스타 델 솔' 같은 곳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포부로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열악한 인프라도 발목을 잡았습니다. 지하철역에서 버스로 30분, 고등학교까지 걸어서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접근성은 주거지로서의 매력을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 있어도 오고 가기 힘들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거대한 파고까지 덮쳤습니다. 코로나119와 고금리로 인한 부동산 시장 냉각, 그리고 소비 위축은 상권 활성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전국 평균 상가 공실률이 중대형 13.8%, 소규모 8.0%, 집합 상가 10.2%인 점을 감안하면, 거북섬의 87%는 그야말로 이례적인 수치입니다.
벼랑 끝에 선 투자자들
거북섬 상가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분양 사기"**라는 표현까지 쓰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100여 명이 800억 원대 피해를 주장하며 분양대행사를 고소했고,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특히, 16억 원을 '영끌'해서 상가를 분양받았던 3대 모녀의 이야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높은 공실률과 월 600만 원에 달하는 대출 이자, 관리비 부담에 허덕이다 결국 상가를 3억 원에 경매로 처분해야만 했습니다. 이들은 허위·과대 광고에 속아 투자했다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전국 곳곳의 '상가 수난 시대'
거북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상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 인천 송도 커넬워크: 한때 '한국의 베네치아'로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커넬워크 상가 역시 33%의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투자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주요 점포들의 이탈과 과잉 공급이 겹치면서 투자자들은 임대 수익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부산 해운대 엘시티: 초고층 랜드마크인 엘시티 아래 상가의 공실률은 무려 70%에 달합니다. 과도한 개발 계획과 내부 갈등,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곳 투자자들 역시 관리비 미납과 대출 부담으로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 동탄 상가: 신도시 개발의 상징인 동탄 상가도 공급 과잉과 소비 위축으로 공실률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물론 일부 성공 사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투자자들이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눈앞의 화려한 광고나 장밋빛 전망에 현혹되기보다는, 냉철하게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과잉 투자의 상흔은 단순히 개인의 손실을 넘어 지역 경제와 사회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거북섬의 사례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